3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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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발 가는대로 맘 가는대로 가‘
라과디아 공항에 도착했을 때 친구로부터 온 톡이다. 그리고 33,114. 오늘 뉴욕에서의 내 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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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카네기홀로 무작정 갔다. 그래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았고, 플로레즈의 팬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존경의 표시였다. 리사이틀이 취소되었다는 안내문이 붙은 대문을 한동안 쳐다보다가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한동안 주변을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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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의 나라면 베이글 하나를 먹으려고 30분을 기다린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오늘은 줄을 서본다. 연어베이글을 주문했는데 친구와 통했는지 주문하고 톡을 보니 같은 걸 권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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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 먹을 곳이 없어 무작정 한인타운까지 걸었다. 정겨운 교보북스는 그대로였지만, 많은 가게들이 몇 년 사이에 바뀌었다. 가는 길에 정말 마음에 드는 인테리어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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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인을 걸어보고 싶어 허드슨야드까지 걸었다. 하이라인에서 앞에 두 사람이 천천히 걷는다. 평소라면 빠른 걸음으로 그들을 제쳤겠지만, 오늘은 그들과 비슷한 보폭으로 걸으며, 다양한 조형물과 건축물들, 조경, 그리고 소탈함과 친근감이 느껴지는 버스킹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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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인에서 내려오니 스타벅스 리저브가 보인다. 소문으로는 기다리는 줄이 길다고 들었는데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 문을 닫은 줄 알았다. 대형프랜차이즈라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작년 겨울 베니스에서 테이블 램프 하나에 마음이 빼앗기더니, 이번엔 한 머그잔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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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뇽블랑 한잔 들고 느긋하게 첼시마켓을 즐기며 잠시나마 뉴요커인척 해본다. 그리곤 허드슨강가를 따라 남쪽으로 걷다가 퍼블릭 테니스코트를 발견했다. 허드슨강, 세계무역센터, 저멀리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는 곳에 있는 테니스코트! 테니스 좋아하는 아내와 둘째딸이 생각만해도 너무 익사이팅 하단다. 오케이, 우리가족 버킷리스트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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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역센터 근처에 새로 오픈할 아트센터를 발견했는데, 내부조감도 하나가 내 마음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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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브릿지를 건너고 보니 어느덧 오후 4시반, 이제 슬슬 집에 갈 시간이다. 20년 전에 방글라데시에서 이민 온 우버기사가 말하길, 뉴욕에는 세무사 사무실마다 일이 넘쳐 너무 잘된다고 한다. 흐흐흐, 여기서도 굶진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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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 도착해 마에스트로에게 아쉬운 마음과 함께 빠른 회복을 바라며 위대함을 이어나가길 응원한다는 이메일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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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이렇게 맺고 싶다: 진짜 여행을 통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은 행복감과 자유로움을 알게 해준다. 그리고 분명한 시작과 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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