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샌프란 출장은 시작할 때부터 이상하리만큼 한 사람이 자꾸 내 머리 속을 맴돌았다. 그런 가운데 모든 출장일정을 마치고, 샌프란에서 70여마일 떨어진 오퍼스원 와이너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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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빈티지는 굉장히 부드러웠고, 무엇보다 한모금 마신 후 입안에서 느껴지는 그 부드러운 향의 여운이 오래 남았다. 2018 빈티지도 2016 만큼 밸런스는 좋았지만, 역시 빈티지에서 느껴지는 차이인지 2016 빈티지에서 느꼈던 부드러움과 향의 여운은 상대적으로 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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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떠나기 전에 아내에게 오퍼스원 와이너리에 가보려고 한다고 말했을 때, 아내가 오퍼스원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나는 뭐 고유명사이거니 했는데, 알고보니 베토벤 같은 거장들이 곡 번호를 붙일 때 사용하는 Op.이 바로 Opus 였고, 그 중에 첫번째라는 의미가 담긴 와인이 바로 오퍼스원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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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퍼스원을 테이스팅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문득 미국생활 10주년을 기념하여 가장 고마웠던 한 분에게 오퍼스원 한병을 선물하고 싶단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출장 중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던 그 분인 전 직장 사장님에게, 고급스런 오퍼스원 카드에 손글씨로 간단한 감사인사를 적어 2016 빈티지를 그자리에서 보냈다. 가격은 2018이 2016보다 착하지만, 미국생활 10주년을 기념하여 가장 고마운 한분에게 선물하는 거라, 나름 내가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느끼고 있는 것 중 가장 최고의 것을 선물하고 싶었다. 마침 2016년은 개인적으로 가장 파란만장한 해였고, 그 직장에서 일을 시작한 해이기도 해서 더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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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나는 그분과 많은 대화를 할 일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 최고의 기회들을 아낌없이 주었고, 내가 저지를 여러 실수들을 고칠 수 있도록 값진 교훈을 가르쳐 주었다. “해곤, 무조건 너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해. 일을 잘하는 건 그 다음이야. 바보같은 클라이언트와 일할 땐, 넌 무조건 좋은 역할만 맡아서 상대방이 너와 계속 일하고 싶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고, 일을 제대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 그 바보같은 클라언트들의 똥고집을 꺾는 모든 나쁜 역할은 사장인 내가 해야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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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내 직장생활의 모토는 “I can do whatever you want”이다. 나보다 경력이 훨씬 많은 동료이든 나이 한참 어린 동료이든, 나에게 어떤 일을 부탁하거나 기술적으로 이런 수정이 가능한지 물으면 내 대답은 항상 동일하다: “I can do whatever you want”. 물론 안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대답함으로써 우선 분위기가 좋아진다. 기술적으로 또 계약적으로 어려운 부분은 대안을 제시하고, 그럼으로써 최적의 방안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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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10년은, 나도 누군가의 10년 중 가장 고마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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