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목구멍 – 3편 (마지막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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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wer Trail까지 걷고나니 오후 4시반이다. 안내데스크에 물으니 시내까지 가는 버스가 공원입구에 있단다. 그래서 그걸 타고 시내에 가서 저녁을 먹고 공항에 가면 시간이 맞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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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같지 않은 시내에서 내린다.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냄새를 따라 걷다보니 야외테이블이 있는 한 식당에 눈길이 간다. 자리를 잡고 식당직원에게 공항까지 가는 버스를 물었다. 그는 잠깐 기다리란 손짓을 하더니 일하고 있던 중국인 학생 한명을 내 앞으로 데려온다. 다시 구글번역기와 손가락을 이용해 서로 최대한 의사소통을 한다. 그 결과, 바로 옆이 버스터미널이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가 20분에 한대씩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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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나니 어느덧 6시15분…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물으니 식당직원 말과는 다르게 매 20분이 아닌, 매시간 10분마다 버스가 있단다. 6시10분 버스는 조금 전에 지나갔고, 다음 버스는 7시10분이다. 잠깐 고민하다가 옆에 택시기사가 있기에, 공항까지 얼마냐고 물었더니 다시 코를 베려고 한다. 비행기 시간은 8시30분이니, 7시10분에 버스를 타고 출발하면 빠듯하긴 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맞을 듯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도대체 제정신이었는지 아찔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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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남은 한시간 동안 작은 아이와 함께 아이스크림도 먹고, 에스프레소 한잔도 하면서 구수한 아사도향과 함께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다가 버스터미널로 왔다. 근데 7시 10분이 되었는데 버스는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다. 카운터로 가서 버스가 도대체 언제 오는거냐고 물으니 역시 대답은 노 프로블롬, 5분! 이란 소리를 대수롭지 않게 반복해서 말한다. 15분이 지나서야 버스는 출발했고, 중간중간에 사람이 타고 내리고를 반복하더니 공항에 거의 8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우리는 바로 체크인 카운터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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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있어야 할 직원이 없었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깨달았다. 우린 다음날 출국이다. 그래서 무조건 오늘 밤에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다른 항공사의 체크인카운터 직원에게 다급하게 물으니 ‘클로즈!’라는 말만 반복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 가보라는 말만 한다. ‘저기’가 뭐냐니까 다시 ‘저기’라고 한다. 그렇게 ‘저기’로 일단 그냥 뛰어가서 또 다급한 목소리로 항공사 이름만 외쳤다 ‘젯스마트! 젯스마트!’. ‘저기’에 있던 그들은 내가 왜 그러는지 영문도 모른체 눈만 껌뻑이고 모른다는 손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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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저기’ 가보라고 했던 카운터 직원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나를 제발 도와달라고 사정했다 ‘헬프미 플리즈, 헬프미 포르파보르’. 헬프미를 5번쯤 외치는데, 갑자기 그 직원이 다시 손가락을 가리키며 ‘저기!’라고 한다. 이번엔 ‘저기’에 한 단어를 더 붙인다 ‘오렌지!’. 손가락을 가리킨 방향으로 눈을 돌리니, 오렌지 색깔의 옷깃이 있는 유니폼을 입은 직원 한명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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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우리의 희망이다. 사정을 이야기하니,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라고 한다. 그녀가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윗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우리는 짧게나마 기도를 했다. 제발 비행기 탈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다. 얼마나 흘렀을까… 먼발치에서 다시 그녀가 보였고, 그녀는 우리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내며 뛰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우리는 게이트까지 특급대우를 받으며 직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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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목구멍에서 천사의 날개품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이렇게 한번씩 안전지대에서 광야로 나와야 겸손해지고 정신을 차린다. 나이 마흔이 넘어 무기력하게 외친 첫 절규였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납득이 안되는 결정을 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뭘 믿고 남미시골에서 버스가 제시간에 오고 출발할 거라 생각했으며, 행여나 중간에 길이라도 막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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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타자마자 문을 닫은 비행기는 안전하게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했다. 역시 이번에도 빠지지 않는 현지인들의 박수… 오늘밤은 우리도 함께 박수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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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을 기억하며, 비행기 타기 직전 기념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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